아메리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우리들의 '국제활동 이야기'
아메리카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처음 시작은 멕시코가 아니었다. 친구로부터 국제워크캠프의 존재를 듣게 된 것은 올해 3월 초.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4월 즈음. 처음에는 유네스코 자원봉사를 지원하려 했다. 여행을 참 좋아하고 또 제법 많이 다니는데 유일하게 밟아보지 못한 땅이 남미와 아프리카이기 때문이었을까? 남들 모두 유럽 여행을 꿈꿀 때 나는 이번 방학만큼은 반드시 두 대륙 중 한 곳을 여행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정한 곳은 페루였다. 그 이름도 이국적인 페루! 심지어 고고학자를 도와 유물을 발굴한다니! 한때 고고학자를 꿈꿨던 나로서는 말만 들어도 두근대는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루 여행의 꿈은 좌절됐다. 바로 미루고 또 미루고 최대한으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게으른 성격 때문. (이 게으른 성격 탓에 멕시코 여행의 시작 역시 순탄치 않았다.) 결국 나는 남미 국가 중 하나인 멕시코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어찌됐든 남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다거북 보호라니! 살면서 언제 또 바다거북을 눈앞에서 직접 관찰하며 보호할 기회가 생기겠는가? 이번만큼은 주저 없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리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뻤다. 그래, 기쁜 게 다였다. 나는 정말 대책 없게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멕시코에 대한 사전 정보는 거의 없었다. 출발 직전, 슬슬 멕시코에 대해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하나는 여행을 즐기기 위해, 또 하나는 생존을 위해서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주변에서 많이들 만류했다. 그 ‘위험한 곳’에, 그것도 여자 혼자 대체 왜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무리 태평한 성격이라 할지라도 멕시코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언어, 화폐, 기후 등 기본적인 정보부터 동일 워크캠프 후기까지 찾아보았다. 그런데 뉴스 기사에 멕시코 지진 얘기가 왜 이리도 많은지. (심지어 떠나기 하루 전날 멕시코에서 지진이 났다. 그리고 내가 멕시코에 있을 당시에도.) 걱정 반 설렘 반에 부푼 채 그렇게 출발일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비행기 티켓을 여행 당일에 예약했다. ESTA (비자 대체용) 를 여유있게 발급받아서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부모님께 한소리 ‘더’ 들었을 것이다. 그래, ‘더’. 결국 그날 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여행이 코앞에 닥쳐서야 짐을 부랴부랴 싸고 환전을 한 후 뒤늦게 공항버스를 탔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로 비행기를 놓쳤을 때의 기분이란... 어쨌든 ‘공항 여행’을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다.) 밥을 맛있게 한 끼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이미 내가 비행기를 놓칠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실패도 배움이기에 보낸 거라고 하셨다. (덕분에 정말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공항은 무조건 여유 있게 가서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공항에 갈 때면 엄마 아빠가 그렇게 빨리 가자고 닦달하던 이유를 잘 알겠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 드디어 나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에서 멕시코로 가는 직항이 없으므로 무조건 다른 나라를 경유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LA공항에 가서 AEROMEXICO를 이용해 멕시코시티로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Guanajuato에서 강도가 자동차 유리창을 부수고 팀원들이 놓고 간 가방과 카메라를 털어간 것이다. 이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터널 안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앞좌석 문을 열어 의자에 앉았다가 유리창이 깨졌다는 얘기를 듣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 좌석에 유리조각들이 잔뜩 있었다. 손에서도 조금 피가 나고 무엇보다 엉덩이에 유리조각들이 박힌 듯 했다. 트렁크에 앉으려고 했는데 (멕시코에서 자동차 뒤 트렁크에 앉아 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도저히 앉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내 옆에는 짐을 도난당한 팀원들과, 이모 차를 가져와 운전했다가 봉변당한 Jose가 있었다. 그들의 당혹스러움과 내 엉덩이의 안녕은 그 안쓰러움을 견줄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해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 밖에도 너무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일일이 나열하려면 꼬박 밤을 새도 모자를 것 같기에 나머지는 일기장에 쓰겠다.
아직도 나는 가끔 멕시코의 밤하늘을 떠올린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별자리를 정말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치 별의 저 반대편까지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딱 알맞겠다. 밤의 해변은 낮의 해변과 사뭇 다르다. 낮의 해변은 뜨겁다. 이런 낮의 묘미는 더위를 피해 해먹 위에서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낮잠을 자며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밤의 해변은 따뜻하다. 침낭 위에서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다가, 파도소리 (가끔 모기소리도 함께) 를 자장가 삼아 아이처럼 잠드는 것. 그 평화로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음식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나면 몹시 허기진다. 이때 시원한 맥주 또는 콜라 한 병을 든 채 자동차 트렁크에 앉아 타코를 먹으러 갈 때의 바람은 영원히 내 기억 한 켠에 자리잡을 것이다. Carlota를 한 조각 먹으면 곧바로 기분이 좋아졌듯이, 멕시코에서의 기억 한 조각을 떠올리면 곧바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 따스했던 온기는 나와 우리 팀원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우리는 페이스북과 Whatsapp으로 연락을 한다.)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따뜻했던 여행.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하늘. 그리고 참 좋은 사람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현실로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그리고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 출발부터 마지막 도착까지 쉬운 것 하나 없었지만 남은 건 모기들에게 무자비하게 뜯긴 상처와 새카만 피부만이 아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순간에 충실하는 법을 알게 해준 그 곳.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다시 가야지. Adios, Mex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