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1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우리들의 '국제활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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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월드비전을 했는데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통학비 탓에 더이상 봉사를 지속할 수 없었다. 또, 외국인 친구들이 꽤 있지만 그들이 모두 한국말을 할 수 있으니까 나 홀로 완전히 낯선 타지로 가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니는 학과 이름도 문화콘텐츠 학과이고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을 접한다는 것은 21세기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크캠프에 앞서 한국의 다양한 전통 게임을 핸드폰에 적어갔고, 한국적인 엽서도 인사동에서 사서 챙겨넣었다. 그리고 초코파이를 챙길지 떡을 좀 챙겨볼지 생각하다가 찰떡파이를 챙겼다. 또, 아무래도 북쪽 나라니까 양말과 내복을 두둑히 챙겼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안 불어서 춥지 않았고, 필요가 없었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동시에 나 역시 꿈을 찾고 싶었다.
평소에 자주 짓는 표정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다. 다들 같은 스케줄 속에서 비슷한 삶을 사니까 저마다 상처는 있겠지만 표정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핀란드에 가서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사람들을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웃고는 있지만 끝 표정이 써보인다고 해야할까? 수많은 나라를 떠돌아서인지 고달픔이 담겨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침조회 시간에 각자의 나라를 설명했고,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핀란드인 리더가 번역해서 한 번 더 설명해줬다. 말을 번역해야한다는게 불편하다는걸 알고는 다들 핀란드어 인사를 배워서 매일 그들에게 인사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더 많은 핀니쉬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눈썰매도 타고 비록 말은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몸과 자연을 이용해 신나게 놀았다. 밤에는 왈츠도 추고 각자의 모국어로 서로의 이름을 써주기도 했다. 봉사자들끼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인터네셔널 디너 타임을 가져서 매운 음식도 가끔 먹었고, 그래서 한국 음식이 그립진 않았다. 옆나라 일본 언니들이 음식을 잘하고 많이 해서 아시안 음식이 그리울 틈이 없었다. 밥을 먹고는 가끔 운동클럽에 가서 같이 뛰어다니고 탁구도 치고 놀았는데 원래 무슬림들은 여자들과 같이 운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부분에선 좀 조심해야했다. 무슬림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운동클럽에선 오직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만 상대했다.
주말에는 가까운 도시로 나가서 학생들과 함께 중세 성을 구경했는데 설명이 빨라서 알아듣지 못하면 오히려 학생들이 내게 다시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주었다. 가진 것도 많지 않으면서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나누려고 했고, 급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와도 안 먹고 선물해주려고 했다. 또,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남북한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궁금해 했으며, 만약 핀란드에서 자기들과 같이 살고 싶으면 한국도 전쟁중이니까 난민 신청하라고 했다.
핀란드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귀요미송을 알려주고, 숫자를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겐 보리보리쌀을 알려주었다. 생김새가 달라서 처음엔 무서워하더니 나중에는 곧잘 따라해서 계속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나를 비롯한 봉사자들 품으로 달려와 폭 안기는데 어쩌면 엄마들이 이런 순간들 때문에 힘들어도 아이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키우는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활동이 끝난 후 헬싱키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며 모두가 엉엉 울었다. 나 역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소중한 친구들을 두고 떠나는게 아쉬워서 눈물이 흘렀다.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친구들을 두고 떠나려니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그곳의 아이들은 울지마라며 "너는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리지만 여기 있는 우리들은 가족과 헤어지고, 심지어는 친구가 눈 앞에서 죽는 것도 보았어. 더 이상 전쟁은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가 울지 않는 이유는 더 큰 이별을 해보았기 때문이야. 유럽과 아시아는 멀지만 페이스북도 되고 우리는 연락하고 지낼 수 있을거야. 살아만 있다면 말이야."라고 이야기했다. 그 곳 난민들에게는 매일 살아있다는 것과 지낼 곳이 있다는 것, 먹을 것이 있다는 것 또,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행복 자체였다. 봉사자들에게 여권이 있고 해외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부러워 했지만 하루하루가 소중하기에 매일을 아쉽지 않게 열심히 사는 듯 보였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에는 매일 핸드폰만 보며 허송세월을 보냈는데 핀란드에서 지내며 기분이 우울할 땐 산책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눈이 오면 썰매 타는 방법을 알아냈다. 오히려 제대로 된 20대를 보낼 수 있게 그들이 내게 많이 알려준 것 같다.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방법, 행복하게 사는 방법,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는 방법 등 말이다. 이런 친구들을 위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나의 역할과 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활동 후기를 담은 온라인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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