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코드) : 케냐(KVDA/STV/08C) / 활동기간 : 2013-08-03 ~ 2013-08-24
• 주제 : CONS/SOCI • 타이틀 : Nyatege Primary School
• 개최지역 : Kisumu - Nyatege Village
- Prologue
어렸을 때, 난 항상 밥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반찬 다른 거 없어?”, “야채 먹기 싫어!” 그럴 때 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아프리카에 있는 너 또래 애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생하는데 이렇게 좋은 음식들 놔두고 또 투정을 부리냐?”, “이 녀석 아프리카에서 며칠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그리고 따로 또 말씀하신 게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물이 귀해서 물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물을 구하러 우물가에 가서 무겁게 떠 와야 된다. 넌 집 안에 정수기, 화장실에 수도꼭지로 1초 안으로 물을 쉽게 쓸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야 된다.” 나는 그 어렸을 때 귀가 닳도록 들었고 가기 싫어했던 아프리카를 이번 여름방학 8월을 이용해서 갔다 오기로 했다. 그것도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말이다. 어렸을 때는 여행 장소로 어떤 곳보다도 내키지 않았던 곳이 아프리카였지만 20살 되고 군대 갔다 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에서 봉사활동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중에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을 해봤지만, 나에게는 아프리카가 아직까지 오지라고 생각해서 제일 대표적인 나라, 그나마 낯익어 보이는 케냐를 선택했다.
케냐는 영어가 공용어이고 모국어는 스와힐리어이다. 쉽게 말해서 케냐사람들은 두 가지 언어를 다 쓰는데, 물론 스와힐리어를 잘 쓰고 영어는 많은 사람들이 쓰는데 안 쓰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KVDA는 Kenya Voluntary Development Association 으로 써 케냐에서 케냐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사람들까지 모아서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주는 봉사활동 단체이다. 그중에서도 각 그룹마다 하는 일들이 다른데, 내가 속해 있었던 그룹이 주로 했던 일은 초등학교 보수 공사를 도와주고, 그 학교 주변에 나무를 심고, 그 주변 지역 마을 사람들 집에 방문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지역은 케냐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Kisumu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참고로 제일 큰 도시는 수도 Nairobi, 두 번째는 Mumbasa이다.) 그 마을 이름은 Nyatege. 이 Nyatege와 Kisumu에서 열정, 슬픔, 기쁨, 유쾌 등 모든 감정들이 3주 동안 교류되었다.
8월 3일 ~ 8월 24일
케냐 워크캠프
- 준비
처음 해외 봉사활동이니 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었다. 현지에서 여행 당일에 받을 수 있는 비자도 한국에서 미리 준비했고, 질병에 대한 예방도 철저히 준비했다. 황열병, 장티푸스, 수막구균성 수막염 예방접종을 받았고, 말라리아 약도 처방 받았다. 다른 질병들은 그렇게 흔치는 않은데 말라리아는 케냐에서 현지인들도 잘 걸리고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충 퇴치제, 모기향도 준비했다. 사전 훈련 워크샵도 갔는데 워크캠프에 대한 설명은 들었으나 참가자 경험담 중에서 아프리카 갔다 온 경험자가 없었던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남들이 잘 안 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고 워크캠프 시작하기 두 달 전부터 여름학기를 듣고 있어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바로 케냐로 출발해야 했다.
- 출발 & 나이로비 도착
원래 8월3일에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8월4일에 그룹 멤버들이랑 같이 프로젝트 지역으로 가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나의 여름학기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케냐에도 늦게 도착해서 나 혼자선 프로젝트지역 까지 가야했다. 시카고에서 출발해서 파리를 경유 했다가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비행기가 4시간 정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늦은 밤 12시40분쯤에 도착했다. 나이로비는 밤 시간이 되면 치안이 매우 안 좋다고 한다. 그래서 밤에 함부로 택시를 타거나 도시로 걸어 나가면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공항 안내데스크와 경비원 옆에 딱 붙어서 KVDA 운전기사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을 만나서 안전하게 나이로비 KVDA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물이 안 나왔다. 숙소에 있는 직원이 큰 물통과 세숫대야를 내주면서 이걸로 씻으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물통으로 물 받아서 씻는 건 집 주변동네가 어쩌다 한번 씩 단수 되는 경우 말고는 드물다. 앞으로 물 받아서 불편하게 샤워 할 걸 상상하면서 한동안 큰 물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물 부족 국가의 실태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 나이로비에서 키수무로
나이로비에서 이틀 밤 머물고 프로젝트 지역인 키수무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5시간 걸릴 것 같은 거리였지만 총 9시간 정도 걸렸다. 버스가 정말로 심각하게 느렸기 때문이다. 한국 고속버스에 비하면 그냥 트랙터 수준이었다. 나는 주위를 살펴봤지만 주변에 현지인들은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이렇게 느리면서 잘 가지도 않는 차를 타면서 저렇게 편하게 잘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느림의 미학이란 단어를 내 머릿속에 되새겨 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키수무에 도착했다. 나이로비는 적도로부터 약간 남반구 쪽으로 떨어져 있어서 약간 쌀쌀 했지만, (참고로 8월에 남반구는 겨울이다.) 키수무는 거의 적도 부근에 있어서 날씨의 차이가 없다. 지구상에서 태양이랑 가장 가까운 곳이니 만큼 햇살이 정말로 뜨거웠다. 키수무에 도착한 다음 그룹 리더 Eva를 만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프로젝트지역 Nyatege 마을로 갔다. 한 가지 또 신기했던 것은 여기는 오토바이 기사들도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마을로 가는 길에 각각 승객들이 짐 싣고 오토바이 타고 가는 모습도 봤다.
- Nyatege 마을 그리고 사람들
내 콧속에 들어오는 공기도 점점 상쾌해지는 걸 보니 사람과 차로 북적대는 도시를 지나 어느 덧 한적한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가는 길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프리카에는 동양인이 많이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손을 흔들면서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그랬다. 아이들이 “How are you?” 라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나에게 순수한 표정으로 반겨주었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마치 스타가 된 느낌이었다. Nyatege 초등학교 옆 건물이 숙소였고 거기에는 우리 그룹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나를 친절하게 반겨 주었다. 모두 다 수줍음도 없었고 처음 들어온 나를 잘 대해 주었고 말도 많이 걸어 주었다. 그 그룹 멤버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수줍어했던 것 같다. 우리 그룹에서는 매일 저녁 먹고 난 뒤에 프로젝트 미팅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어느 정도 되가는지, 내일 할 일은 무엇이며, 오늘 일 외에 다른 특별한 일과, 주의 사항, 그리고 칭찬해주기 등으로 그룹끼리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다.
- 벽돌 만들기
우리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된 일이자 힘들었던 일이 바로 벽돌 만들기였다. Nyatege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벽돌 최소한 5000장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5000장이 무슨 동물 이름도 아니고 어떻게 5000장을 만들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2주 안으로? 처음오고 하루 쉬고 일터로 나가니 진흙이 커다란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저 흙을 다 벽돌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입이 쩍 벌어졌다. 벽돌 만들기는 주로 물 떠오기, 진흙 반죽, 벽돌 프레임 맞추기, 프레임 맞춘 벽돌 양지로 옮기기 로 구성되어있다. 물은 걸어서 5분 거리에 강가가 있어서 물 길러 그쪽까지 가야했다. 물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큰 물통 여러 개를 카트에 담아서 간다면 골치 아프다. 물 뜨러 한번 갔다 오면 바로 힘 빠진다. 진흙 반죽에서는 물 10L 정도 씩 여러 번 붓고 흙을 밟아 줘야한다. 큰 흙에다 물을 섞으면 더 무거워진다. 벽돌 프레임 맞추기, 말 그대로 프레임에다가 흙으로 채워서 육면체로 만드는 작업이다. 나는 이번에 이 일을 하면서 세상에서 뭉치면 제일 무섭고 무거운 것은 물과 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여기 Nyatege 마을에서는 낮 12시가 되기만 하면 햇살이 무서울 정도로 강해지고 날씨도 엄청나게 더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7시부터 12시 까지만 일을 하고 12시부터 5시까지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숙소 안에서 쉬도록 했다. 그런데 여기 현지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도 군대 갔다 온 나보다도 일을 더 잘 하고 지칠 줄을 몰랐다. 나는 조금만 해도 지치는데 말이다. 열 살 이하의 꼬마 애들도 벽돌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 조그만 몸뚱이에 벽돌 한 개를 낑낑 이고 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기특하면서도 미안했다. 2주차 금요일에 벽돌 만들기가 끝났을 때 우리들은 진흙탕에 뒹구르고 멤버들 빠뜨리고, 강가에서 물장난도 치고 신이 났었다. 힘든 일의 끝을 완벽하게 장식하고 난 뒤의 순간은 세상에 그 어떤 달콤한 것보다도 더 달콤한 엔도르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물 길러오기
Nyatege 마을에는 수도시설이 없다. 씻을 때나 먹을 때나 요리할 때나 물을 우물가에 가서 떠와야 한다. 그래서 매일 물을 하루에 두 번씩 정도는 가서 떠다 와야 한다. 그룹들을 2인 1조로 나눠서 매일 물 당번 조가 정해진다. 물통 담아가는 카트가 있는데 이 카트는 바퀴가 한 개다. 좁은 길을 갈 때나 울퉁불퉁 한 길을 지나갈 때는 유용하지만 균형을 한번 잃어버리면 바로 넘어지면서 물을 다 쏟아버리게 된다. 여기는 물 한 방울이라도 쏟으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물이 귀하다. 벽돌 작업 마치고 점심때 물 뜨고 돌아오는 길에 힘이 없어서 한 번씩 물을 쏟곤 했다. 하도 힘들게 물을 구하다 보니까 샤워하기도 미안한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샤워할 때와는 달리 물을 진짜로 적게 알뜰하게 쓴 것 같다. 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 아이들
숙소가 초등학교 옆에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매일 학교 수업 마치자마자 찾아온다. 아이들은 정말로 순수했다. 사탕도 주고 놀아주고 영국에서 온 Leila는 아이들 얼굴에다가 그림을 그려주었다. (메이크업의 일종이라고 할까) 여기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사진 찍어 주는 것이다. 여기 아이들은 사진기나 폰 카메라를 되게 신기한 물건으로 생각한다. 사진 찍어줄려고 하면 우르르 몰려오고 찍어서 보여주면 서로 보려고 하고 재미있어서 그런지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 주말: 편안한 휴식 그리고 도시여행 (키수무)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 첫 째 주말, 우리 그룹들은 주중에 계획을 세워서 키수무 시내로 나가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일단 호텔로 향했다. 물도 전기도 안 들어오는 Nyatege 숙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폰도 제대로 못 쓰는 상태여서 사실상 시티투어가 주된 목적이 아니라 호텔에서 편하게 샤워하고 전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환경에서 휴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금, 토, 일요일 2박3일 지낼 때 필요한 짐을 다 풀고 잠시 옥상 테라스에 올라왔다. 빅토리아 호수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키수무 도시는 바로 옆에 빅토리아 호수를 끼고 있다.) 토요일에는 보트를 타고 빅토리아 호수를 관광했다. 빅토리아 호수는 아프리카에서 제일 넓은 담수호로써 카스피 호, 슈피리어 호 와 함께 세계 3대 호수로 불린다.
- 우리나라 문화 소개
다른 나라사람들 끼리 모여 있으면 꼭 해야 되는 것이 바로 자기나라 문화소개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라면과 불고기 양념소스, 간장, 참기름을 챙겨왔었다. 한국에서 온 다른 동료는 마른 미역을 챙겨 와서 현지에서 사온 소고기와 함께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를 만들어서 다른 나라 그룹들에게 맛을 보여주었다. 반응은 그야 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이 불고기에 환장할 정도였다. 내일 또 할 수 있냐고 하는 친구도 있고 한국에 꼭 한번 가야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른 날에는 라면을 5개정도 끓여서 그룹 멤버들에게 맛을 보여주었더니 역시 반응은 좋았다. 나도 한국을 떠나서 안 먹다가 여기서 먹으니까 너무나도 맛있었다.
- 나무 심기, 마을 사람들 방문
2주차까지 벽돌 만들기를 끝낸 우리들은 한 시름 놓고 한 층의 여유를 찾았다. Nyatege 학교 운동장 주변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땅을 삽으로 파고 나무 심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지치지도 않고 금방 일을 끝낼 수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가...
그러고 나서 3주차에 또 다른 일은 마을 사람들 집에 방문해서 이야기 하고 같이 식사하는 것이었다. 케냐 사람들의 주식 중에 하나가 바로 “우갈리” 였는데 3주차 동안 마을 사람들 방문하면서 많이 먹었던 것이 바로 “우갈리” 였다. 우갈리는 옥수수 가루를 뜨거운 물에 삶아서 떡처럼 만들어 진 것인데 케냐 사람들은 이걸 밥처럼 맛있게 먹는데 우리 그룹들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그냥 맛있게 먹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 아쉬운 이별
어느 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생긴 정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감정인 것 같다. 떠나는 전 날만 해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뭔가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 했다. 서로 이메일 주소, 그리고 페이스북 주소 교환하면서 서로 이별의 안타까움을 달랬다. 아쉬움의 감정 속에 아쉬워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동료들을 등지고 우리는 그렇게 떠났다.
- Epilogue
아프리카 그리고 케냐... 그렇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케냐 여행과 봉사활동은 만족과 아쉬움의 교차 속에서 끝이 났다. 한국에 있었을 때 모든 불편함에 대해 불평했던 일들이 이번 케냐 워크캠프로 인해 부끄럽게 느껴졌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아프리카, 그리고 케냐는 우리나라 보다 덜 발전했고 불편함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케냐 사람들의 순수함과 열정은 그 어느 나라사람들 보다 못 지 않을 것이다. 난 이번에 케냐 워크캠프를 통해서 느림의 미학, 그리고 잠재된 열정, 따뜻한 인심을 한 몸에 받고 배웠다. 다음에도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아프리카 워크캠프에 도전을 하고 싶다.
• 총 참가국 수는? 7
• 총 참가자 수는? 13
• 항공료 : 1700000 원
• 교통비(항공료 제외) : 90000 원
• 참가 중 지출 비용(현지 참가비 제외) : 150000 원
• 미팅포인트 : 단체사무실
• 미팅포인트로 이동하는데 있어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큰 불편 없었음
• 숙박형태 : 학교
• 화장실 : 건물근방
• 인터넷 사용 환경 : 불가능
• 공식 언어 : 영어 / 공식 언어로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었는가? : 그렇다
• 취사여부 : 직접 취사
• 참가자들 사이의 교류 정도 : 매우 활발
• 지역 주민과의 교류 정도 : 매우 활발
• 봉사활동의 강도 : 보통
• 봉사활동 시간(1일 기준) : 5~6
• 사전 제공된 인포싯에 설명된 정보와 실제 캠프와의 차이점이 있었나요? 대부분 일치
• 기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