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가(코드) : 프랑스(CONC 002) / 활동기간 : 2014-07-09 ~ 2014-07-30
• 주제 : RENO • 타이틀 : APPRES
• 개최지역 : 프랑스 보르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메신저나 펜팔 사이트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성사되지 않았고, 친구를 통해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2014년 7월. 나의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부족한 영어실력에 첫 유럽여행,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국을 한다.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에서 워크캠프를 참가한 후, 영국 런던을 향하는 40일간의 일정이다. 워크캠프는 7월 9일부터 30일 까지 3주 동안 프랑스 보르도에서 있었다.
미팅 포인트에서 만나는 것부터 걱정이었다. 나의 미팅 포인트는 보르도의 생장이라는 기차역이었다. 원래 미팅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나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6시 30분에 도착했다. ‘먼저 가버렸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안고 역에 도착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캠프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넓은 홀에 들어서자 약간 갈색 빛을 내는 머리를 한 외국 여인이 CONCORDIA라는 푯말을 든 채,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줬다. 나는 직감적으로 캠프임을 알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MARA라는 이름의 그리스인이었다. 그리고 우리 캠프 2명의 리더 중 1명이였고, 기분 좋은 미소를 가져 이번 캠프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다른 친구들은 먼저 도착해 숙소로 이동해있다고 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것은 버나드라는 이름의 푸근한 인상을 가진 아저씨가 차를 태워주셨는데 우리가 일하는 곳의 주인 쯤 되는 분이셨다. 우리의 숙소는 조금은 허름한 보트였고, 우리가 하게 될 일은 보트 수선이었다. 친구들은 우리를 기다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처음엔 긴장을 했는지 이름을 외우기 어려웠다. 첫날,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저녁에는 이름 맞추기 게임 등을 하며 어색함을 풀었다.
우리는 무작위로 그룹을 정해서 하루씩 돌아가며 요리, 보트청소, 화장실부엌청소, 휴식을 하기로 했다. 나는 첫날부터 요리팀이 되었고, 영어가 부족하던 나는 자신감을 잃고 말을 거의 못하다가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첫 요리팀 이었기 때문에 다른조가 할 음식의 재료를 적어 가까운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루이, 슬로바키아에서 온 안나 라는 친구와 한 조였는데, 처음 이다보니 뭐가 얼마나 필요한지, 이 재료가 그들이 원하는 재료가 맞는지 알기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첫 요리를 마쳤다.
다음날, 일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일은 ‘마스틱스’라는 이름의 작업이었는데, 본드 같은 것을 배 밑바닥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발라 방수작업을 하는 일이였다. 나는 전날 요리를 하느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었는데, 하루 먼저 경험해 본 친구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같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라 약간은 지루했지만 일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스페인 친구들이 노래도 신나는 노래도 틀어줘 신나게 할 수 있었다. 일은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1시면 끝이 났고, 끝난 후에는 점심을 먹고, 보트에서 게임도하고, 맥주도 마시고, 노래를 틀어놓고 춤도 추며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일하고 정들며 하루하루 친해졌고, 드디어 첫 주말이 다가왔다. 주말에는 시내나 가까운 곳에 놀러간다기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첫 주말에는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이 있어 우리는 시내의 펍에 가서 결승전을 관전하기로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 무엇보다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펍엔 사람들이 가득해 펍 주변에 서서 볼 수밖에 없었다. 비도 추적주적 내렸다. 하지만 가져간 맥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응원하며 외국에서의 월드컵 분위기를 느꼈다.
어느 날은 무지 더워 일이 끝나고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호수에 가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정말 여유롭고 한가한 휴식이었다. 호수는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의 바닷가 같이 한곳에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고, 안전요원도 있었고, 안전구역으로 줄을 쳐놓아 그 안에서만 놀았다. 수영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주는 일이 끝나면 거의 숙소인 보트에서만 놀았는데 시내에 한 번 다녀오니 시내에 가서 쇼핑을 하는 날도 있었고, 가까운 옆 캠프와 만나 놀기도 했으며, 숙소 주변의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두 번째 주말에는 와이너리에 가서 지하창고 구경도하고 와인시음을 했다. 너무 맛있어서 가족 선물용으로 화이트와인 한 병을 사오기도 했다. 와이너리가 있는 마을은 샹떼미뇽 이라는 곳이였는데 정말 예쁜 마을이었다. 와인 지하창고는 매우 시원했으며 말로만 듣던 와인 숙성 장소에 가보니 동굴 같기도 하고 신기했다. 또 하루는 보트를 타고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모래사장(거의 사막과 같았다)에 가기도했다. 그 곳의 이름은 아르카숑의 뒨 뒤 필라 였다. 바다에서 볼 때는 사막 같고 광활한 모래사장 같았는데, 한참을 걸어 꼭대기에 올라서니 감동이 몰려올 정도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보트는 돛을 움직여 바람을 타고 가는 배였는데 돛단배라는 말처럼 정말 작은 배였다. 버나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직접 돛을 조종했다. 아직도 아저씨의 명령(?)이 생생하다. “Are you ready to turn? Turn!".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이 물에 젖어 망가지고 말았다. 친구들이 쌀에 넣어놓으면 괜찮다고 위로해주어 돌아오자마자 쌀에 넣어두었는데 결국 죽고 말았다. 어느 날은 다른 캠프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루 자며 같이 놀기도 했다. 그 캠프는 원래 텐트를 치고 자던 캠프였다. 마지막 주말은 지역 축제에 참가해 역시 텐트를 치고 자면서 와인도마시고 맥주도마시고 맛있는 음식들도 먹고 콘서트 같은 것을 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축제를 즐기며 이것이 진정한 축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즐겼고, 콘서트가 끝나거나, 하기 전에는 공연 팀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 정말 쉴 틈 없이 재밌었다.
하루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위해서 요리를 해주는 날과 여자들이 남자들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 날을 정했는데 우리 남자들은 우리가 일하는 보트위에 테이블을 갖다놓고 2명이 웨이터를 해서 대접했다. 요리는 내게는 생소한 치킨 케이크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보트 위 식사는 저녁노을과 촛불이 어우러져 정말 로멘틱한 분위기 였다. 여자들이 요리를 하는 날은 게임을 섞어 우리가 풍선을 찾아 그 안의 초대권을 찾아오게끔 해서 호수로 유인하는 식이였다. 그런데 눈치 빠른 남자들이 여자들의 계획을 눈치 채고 풍선도 안 찾고 바로 호수로 갔다. 가는 길에 풍선 몇 개를 발견하기도 했다. 마침 터키친구 에페의 생일이라 생일파티도 함께 했다.
또 다시 일이 시작되고, 다시 나의 요리팀 차례도 돌아왔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불고기소스와 호떡믹스를 꺼냈다. 그런데 내게 비보가 전해졌다. 캠프 막바지를 향해갈 즈음 나의 요리순서가 왔는데 풍족하게 썼던 식비가 거의 없다며, 쇠고기가 비싸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스는 오직 불고기를 위한 소스였고, 터키 친구들이 돼지고기를 못 먹기 때문에 나는 다른조가 쓰려한 소고기 한 팩을 빌리고 햄버거 패티용 고기를 녹여 불고기를 하기로 했다. 약간 걱정이 됐지만 요리는 순조로웠고, 코리안 팬케익이라고 불리던 호떡도 친구들과 함께 빚어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기가 한국인 이였다고 말하던 친구부터 맛을 음미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던 친구도 있었다. 슬로바키아의 안나는 나보고 요리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며(내가 우산도 고쳐주고 침낭도 고쳐준 적이 있었다.-사실 고쳤다기보다는 할 줄 모르던 것을 알려준 셈이다) 자기의 첫 번째 남편이라며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 나를 건들지 말라고 장난치기도 했다. 덤으로 김 1팩과 고추장 튜브 2개를 가져갔는데 같은 캠프의 한국인 애와 상의해서 한번은 김밥을 하기도하고, 비빔밥을 대접하기도 했다. 역시 반응은 폭발적.
캠프 중, 작은 사고도 있었고, 왕따 비슷한 것도 있었다. 두 사건의 주인공은 같은 인물이였고 프랑스 파리에서 온 줄리엣 이라는 친구였다. 배를 정비하기위해 배주위로 구조물을 해놓고 그곳에 올라가서 일을 했는데 줄리엣이 거기서 떨어진 것이었다.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갔고, 우리는 다시 못 올 줄 알고 짐을 다 싸줬는데 머리로 떨어졌는데 멀쩡히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가 시발점 이였다. 다들 그 친구가 싫었었는데 내색 않고 있다가 그때 터진 것 이였다. 그 친구는 눈만 뜨면 이상한 질문들을 쏟아냈고 노래만 나오면 춤을 추자고 손을 잡고 했기 때문에 다들 그런 행동이 귀찮고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는데 다른 외국친구들은 뒤에서 그 친구를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놀리는 것이 매우 웃겨서 미안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친구 덕에 다른 멤버들이 단합이 더 잘됐던 것 같기도 하다. 아 또 다른 프랑스인 조프레 라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는 마리화나를 했고, 술을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다른 캠프와 문제를 일으켜 캠프가 끝나기 전에 떠나게 되었다.
캠프 막바지가 다가오자 3주라는 시간이 정말 3일 같이 느껴졌고, 다들 아쉬워하기 시작했다. 멜트라는 터키 친구가 티셔츠 한 장을 꺼내 멘트와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나는 한국에서 가져가 일할 때 입던 워크캠프 티셔츠를 꺼내 나도 멘트와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 모두 티셔츠 한 장씩을 꺼내 들고 와 서로 추억 할 수 있게 선물을 해 주었다. 프란시스코라는 스페인 친구는 일정 때문에 하루먼저 떠났는데, 그가 떠나자 정말 헤어지는구나 하고 정말 실감이 나서 우리는 마지막 날을 거의 밤 새 놀았다. 밤새 놀 수 있었던 것은 캠프가 끝나기 하루전날, 우리가 수리했던 배가 완성이 되어 커다란 크레인을 불러 바다에 띄우고 동네 축제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배를 바다에 띄우는 행사는 생각보다 큰 행사였다. 배가 바다에 내려질 때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는데 우리가 작업한 배가 바다에 잘 떠줘서 매우 뿌듯했다. 축제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였는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우리가 일하던 곳은 바가 되었다. 레게 공연팀이 와서 간이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우리는 그곳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바비큐를 구워 샌드위치에 얹어 팔았다. 그때의 신나는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축제기에 우리는 정말 아쉬워하며 충분히 즐겼다. 캠프 해산 당일 새벽. 절반 이상의 친구들이 떠나고 나, 마리아, 루이, 줄리아 4명만이 남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이 친구들을 죽기 전에 또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부터 아쉬움이 너무 진하게 남았다. 3주 동안 만난 친구들이지만 3년 이상 본 친구들같이 정도 많이 들어 헤어질 때 우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워크캠프가 끝이 났고, 나는 또다시 외로운 여행자가 되었다. 하지만 캠프 전 여행과 후의 여행은 느낌이 달랐다. 어디를 가도 두렵지 않았고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며, 따뜻했다.
멤버 중 프란시스코 라는 친구는 이번 캠프가 3번째라고 하는데 이번이 최고라고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정말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캠프,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그 때를 생각하면 마치 꿈을 꾼 느낌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참가하고 싶다. 친구들과는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그룹을 만들어 사진도 주고받고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기에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총 참가국 수는? 5
• 총 참가자 수는? 14
• 항공료 : 1,600,000 원
• 교통비(항공료 제외) : 약 100,000 원
• 참가 중 지출 비용(현지 참가비 제외) : 약 30,000 원
• 미팅포인트 : 역
• 미팅포인트로 이동하는데 있어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도착, 출발의 지연 등 현지 교통시스템의 문제, 큰 불편 없었음
• 숙박형태 : 기타 (보트)
• 화장실 : 건물 내
• 인터넷 사용 환경 : 불가능
• 공식 언어 : 영어 / 공식 언어로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었는가? : 그렇다
• 취사여부 : 직접 취사
• 참가자들 사이의 교류 정도 : 매우 활발
• 지역 주민과의 교류 정도 : 활발
• 봉사활동의 강도 : 매우 쉬움
• 봉사활동 시간(1일 기준) : 3~4
• 사전 제공된 인포싯에 설명된 정보와 실제 캠프와의 차이점이 있었나요? 대부분 일치
• 기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잊지못할 추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