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1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우리들의 '국제활동 이야기'
유럽1
처음으로 해외 봉사를 갔던 나라는 네팔이었다. 공대에 다녀서 초등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과학팀 안에서 함께 과학실험을 보여주는 교육봉사를 했었다. 교육 후에는 학교도 꾸며주는 노력봉사 또한 겸비했었다. 학교 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을 사용할 수 없어서 빛이 들어오는 오전까지만 공부할 수 있고 오후에는 전부 집으로 들어가 집안일을 도와주어야만 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 중 에서도 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햄버거를 처음 먹어서 빵 따로 양배추 따로 먹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면서도 짠했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한번 더 다른 나라로 봉사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갔던 곳이 베트남이었다. 그곳은 보육원 이었는데 건물을 짓고 돼지우리를 치워주고 운동장의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지식을 전달해주는 일과는 다르게 일손을 보태는 일이라 그런지 더 힘들고 고된 일이었지만, 그만큼 함께한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정이 들었다.
그때 문득 선진국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학교를 1년 휴학할 일이 생기고 휴학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중 워크캠프라는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봉사와는 다르지만, 다른 나라 친구를 사귀면서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고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신청했다.
사실 많은 것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베트남에서 했던 것이 건축이었기 때문에 위치가 어딘지 숙소환경이 어떤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날짜가 적합하고, 입국하는 나라가 프랑스라서 덜컥 결정해버렸다. 그렇게 결정하고 합격통보가 온 후에야 찾아보니 알프스 산맥 안에서 텐트를 치고 돌담을 쌓는 활동이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가는 방법을 찾아봐도 구글맵에서는 나오지 않고, 그래서 바우처를 보니 3번 정도 더 갈아타라고 하니 너무 복잡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같이 가는 한국인 분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과 연락해서 같이 알아보고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가서는 어떤 한국 음식을 해주고 어떤 문화를 알려줄 것인지를 함께 정했다. 처음에는 다른 한국인과 함께이면 못하는 영어실력도 많이 비교되고 나 조차 영어로 말하는 것이 더 쑥쓰러울 것 같고, 한국분과만 함께 다니며 다른사람들과 덜 친해질까봐 혼자만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같이 간 그 언니 덕에 난 3주를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고, 힘들 때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언니가 없었다면 캠프가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프랑스 파리에서 리옹으로 기차를 타고 가서 리옹에서 하룻밤을 묵고 무티에르로 또 2시간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곳에서 champagny로가는 버스를 타고 그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기다렸다. 그 차를타고 또 30분정도 들어가면 있는 곳이 우리의 베이스 캠프였다. 텐트치고 자는거라고 해서 정말 텐트가 아닌 군인들 숙소같은 커다란 움막같은곳에 침대가 많이 놓여있는 그런 곳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냥 텐트였다. 아버지와 낚시를 갈 때 가지고 갔던 그 텐트. 8월이었고, 한국은 더웠으며 파리도 더운정도는 아니였지만 가을정도의 날씨라 이렇게 추울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저 바우처에 약간 추울 예정이니 따뜻한 옷 몇 개만 챙기라는 말에 정말 따뜻한옷 몇 개만 챙겨왔는데 완전 새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옷과 담요 신발도 챙겨줘서 점점 적응을 해 날갈수 있었지만 첫날이 우리가 생활하던중 가장 추운 날씨 였다. 그래서 첫날밤 이후 난 너무 겁이 났다. 그만 두려면 첫날 바로 그만두는게 내 신상에 좋을것만 같다는 생각밖에 할수 없었다. 밥은 밖에서 먹어야 했고, 씻는 시설은 다행이 잘 되있었지만, 와이파이가 된다던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한장소에서만 되어서 한국으로 연락도 제대로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크캠프를 한번더 하고 싶다. 그래서 워크캠프 중간에 유럽에 있을동안 한번 더 어떻게 할수 있을까를 찾아본 적도 있었다. 날짜가 맞지않아 실패했지만, 그만큼 나에게 너무 좋은 추억이자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었다.
난 참 사람 복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처음 만난 한국분이신 보영언니가 그 시초였다. 정말 나보다 작고 말라서 힘도 없을 것 같은데, 가자마자 추워하는 친구들을 위해 자기 옷을 빌려주면서 건조해서 얼굴 튼 친구들에게 크림을 제공하고 아프면 약을 챙겨주는등 엄마 같은 존재였다. 저렇게 하면 언니가 힘들 것 같았지만 그 마음을 친구들이 너무 잘 알아줘서 정말 보석 같은 존재로 나중에 만나 친구들과 이야기할때도 절대 빠지지않는 이름이 보영 이라는 이름이었으니까. 언니의 선행은 참 대단했다. 그런 언니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수 있었고 난 인생의 친구를 얻게된 기분이다.
캠프는 프랑스 출신의 팀 리더 사이먼을 비롯해 프랑스인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대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에스텔, 독일 드레스덴 공대를 다니는 레오와 마뉴엘, 독일 쾰른옆쪽에 사는 배우지망생 리사, 체코에서 허벌라이프 매니저 일을 하는 키가 정말 컸던 루시, 일본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과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처음만났다던 키에와 시오리, 벨라루스에서 온 약간 괴짜같던 블라드, 모로코 이슬람 문화에서 와서 다른 종교의 문화를 알려준 아지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온 막내아들 같았던 로드리고와 바르셀로나에서 와서 카탈란 문화를 많이 알려준 알레이쉬 그리고 한국인 보영언니와 나 이렇게 14명이었다.
사이먼은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보통 8시에 일을 하러 출발해서 9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서 밥을먹었다. 그러면 우리를 재촉하다가도 제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혼자 휘릭 가버리고 먼저 도착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도 어쩔수없이 함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하나 꾀부리는 사람 없이 서로돕고 그 이후에는 함께놀고 그덕에 일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일이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은 시간을 일했고, 틈틈히 쉴 시간이 주어졌으며 다함께 일해서 오히려 즐거웠다. 우리가 한일은 돌담을 쌓는 일이었다. 한쪽부분은 그 전년도에 다른사람들이 쌓고 가고, 나머지 부분의 돌담을 쌓는 일이었다. 일단 땅을 파서 고르게 만들고 돌멩이를 옮겨 그곳에 쌓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큰돌멩이가 주변에 없어 저 멀리서 가지고 날라야 했다. 돌담을 쌓으려면 흔들리지 않고 딱 맞는 돌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역시 어려웠다. 그래도 요령을 가르쳐 준 후에 일을 할수 있게 해주셔서 조금더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이후는 자유시간이었다. 비가 온 날은 쉬기도 하고 주말에는 함께 알프스 산맥을 하이킹을 하고 바위도 타보고 나무도 탔다. 다들 산을 좋아해서 왔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 난 꼴찌로 산을 탔지만 나역시 산이 너무 좋아졌다.
평일에는 일을하고 주말에는 함께 하이킹을 하며 3주를 보냈다. 중간중간에 우리나라에서 추석이 있어 나와 보영언니가 구절판도 만들어주고 김밥, 참치볶음밥, 갈비찜, 라면 짜빠게티등 틈틈히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공기놀이도 가지고 갔지만 너무 어려워서 애들이 흥미를 가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만 술게임 문화가 있는줄 알았더니 독일 친구들이 술게임을 정말 많이 알아서 함께 술게임을 하고, 매일밤 카드놀이를 하며 밤을 보냈다. 우리나라 게임중 애들이 제일 좋아하던 게임은 공공칠빵이었다. 매일 제로제로세븐뱀 을 하자며 우리를 꼬셨다.
문화교류를 하는 캠프라서 그랬는지 그친구들이 참 좋은 친구들이라 그랬는지 정말 다른점을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었다. 동양의 문화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어서 사는경향임에 반면 서양문화는 자기가 얻을수 있는 것은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것 배려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서양친구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는지 어느날은 일본친구에게 와서 다른친구는 많이 먹고 음식을 더 요구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다며 혹시 먹는 것이 부족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 물어볼 때 이친구들은 사소한것까지 신경쓰면서 우리를 배려해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동양인 비하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했었다. 사실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한국말을 알려주는데 너무 잘해서 너 한국인 같다고 이야기하니 갑자기 눈을 손가락으로 옆으로 찢으면서 이제 나 한국인같아? 라고 물어봤을때는 너무 당황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동양인 비하인가? 그러고도 몇번을 웃으며 한국인같아? 라고 물어볼 때 난 기분나쁜티를 많이 내었다. 그친구는 동양인비하의 의도가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분나쁘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부터는 한번도 그 행동을 한적이 없었다. 모르고 한것이니 동양인 비하라고 볼것도 없다. 그만큼 친구들이 너무 잘해주었다.
어느날은 캠프끝나고의 일정을 이야기 하던중 나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프랑스 다음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벨기에 스페인을 간다고하니 그곳에 사는 친구들이 다들 자기네집으로 초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난 폐끼치기 싫어서 괜찮다고 이야기하자 난 너가 좋으니까 초대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정말인가? 그냥지나가는 말로 하는것인가? 하고 말았다. 하지만 몇일후 언제 올거냐고 날짜를 물어보고 가는 차편은 예약했냐고 물어보면서 집으로 오는 방법까지 알려주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그이후 난 오스트리아에서 에스텔네 집에 2박을 묵었고, 체코에서는 루시네집에서 1박을 묵고 프라하로 함께가서 같이 관광을 했으며 그옆에 드레스덴에서 레오와 2일 묵고 레오네 고향으로가서 2일 더묵고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친구가 마드리드로 와서 알레이쉬와 로드리고 두명을 함꺼번에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밋밋할것 같던 여행이 그 친구들로 인해 더 활기차 진것 같다. 난 13명의 친구들을 얻을수 있었고 그만큼 그나라의 문화를 알게된것같다. 레오는 취미가 수영 축구 핸드볼 여행 승마 독서 등등이고, 거기에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줄 안다. 그리고 나역시 자동차공학이고 그친구는 전자공학쪽 공부를 하고있어서 함께 공부하는 과목 이야기를 하면 참 많은것을 즐기며 공부하고 있구나를 많이 느꼈다. 그친구를 보면서 내 취미는 뭐지? 생각해보면 내가 쉬는시간에 하는거라곤 핸드폰만지는 일 말고는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친구에게 널 보며 나도 취미를 만들고 나를 좀 바꿔보아야 겠다. 라는 말을했다. 그랬더니 넌 너자체로도 지구에서 가장 소중하고 멋진 사람이라며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해주었을때 그친구는 그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있다는것을 알고,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한국사람들에게 정말 이 캠프를 추천해주고싶다.